노동조합 조직률이 높은 나라, 노동시간이 짧고 실질임금이 높은 나라, 임금격차가 적은 나라, 모두 비례대표제 국가들이다. 그 이유는 노동자를 대변하는 정당이 유력한 정당으로 국회 내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비례대표가 장식품에 불과한 병립형 비례대표제 포함)를 택하고 있는 미국, 일본, 한국은 노동조합 조직률도 낮고 노동시간도 길다.

대한민국의 경우에 저임금노동자 비율이 25.1%(2012년 기준)로, OECD 평균 16.3%를 훨씬 웃도는 수치를 보이고 있다. 우리보다 저임금 근로자 비율이 높은 국가는 25.3%를 기록한 미국이었다. 미국은 대표적인 소선거구제 국가로,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이 모든 권력을 쥐고 있다. 반면에 저임금 노동자 비율이 가장 낮은 국가는 벨리에(3.4%)인데, 벨기에 역시 '연동형 비례대표제' 국가이다(2015년).

대한민국의 경우 2014년 기준 여성 임금 중간 값이 남성에 비해 36.7%나 적었다. 임금의 남녀격차가 OECD에서 가장 높은 편이었다. 한국과 반대로 남녀 임금 차이가 제일 적은 나라는 벨기에(3.3%)였다.


뉴질랜드는 본래 소선거구제 국가였다. 그래서 20%를 득표해도 국회의석은 거의 못 차지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대표적으로 1981년 뉴질랜드 총선에서 20.7%를 차지한 사회신용당은 의석을 2%밖에 차지하지 못했다. 표심의 왜곡되어 온 것이다. 그래서 뉴질랜드는 1993년 국민투표까지 거쳐서 선거제도를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꿨다.

그 다음에 뉴질랜드에서 일어난 변화는 어떤 것일까? 최저임금 인상, 고소득층 증세 단행, 민영화되었던 산재보험국유화, 실질임금 상승, 공공주택임대사업 개선, 노동조합의 지위강화 같은 변화들이 일어났다. 거대 양당제 였던 뉴질랜드 의회가 다당 구조로 바뀌면서 다수의 시민들이 바라던 변화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양극화가 심화되던 뉴질랜드 사회가 다시 방향을 잡게 된 것은 선거제도 개혁 덕분이었다.


출처 : 비례민주주의연대

앞서 설명한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하면, 이렇다. 독일 연방하원의원은 총 598명이 있는데, 일단 이 598명을 지역구 299명, 비례대표 299명으로 나눈다. 그리고 유권자들은 지역구 후보에게 1표, 정당에게 1표를 던진다.

중요한 것은 각 정당별로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할 때에는 299명의 비례대표만 배분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598명을 정당득표율대로 배분하는 것이다. 그리고 각 정당은 자기 정당이 배분받은 의석 안에서 지역구 당선자부터 인정하고 모자라는 것은 비례대표 후보자로 채우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논의되고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독일과 뉴질랜드 등이 채택하고 있는 '지역구 선거가 있는 비례대표제'이다. 대한민국 유권자들은 적응하기가 아주 쉬운 방식이다. 지금처럼 지역구 후보에게 1표, 정당에게 1표를 투표하면 되기 때문이다. 다만, 표를 계산해서 의석을 배분하는 방식만 달라진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하고 있는 국가인 독일, 뉴질랜드 식 제도를 보면,

1) 우선 각 정당이 얻은 정당득표율(비례대표 득표율)을 계산하여 전체 의석을 득표율대로 배분하다. 가령 총 100석의 의석이 있는데, A 정당이 30%를 득표했다면, A정당에게 30석을 일단 배분하는 것이다.

2) 30석을 배분받은 A정당이 지역구에서 낸 후보 중 20명이 당선됐다면, 지역구 당선자는 우선 인정한다. 그리고 모자라는 10석은 비례대표로 채우는 것이다. 만약 A정당이 지역구 당선자가 1명도 없다면 A정당은 배분받은 30석 전체를 비례대표로 채운다. 반대로 A정당이 지역구에서 30석 모두 당선되었다면 A정당은 비례대표 배분이 없다. 중요한 것은 정당득표율이고 정당득표율대로 배분받은 의석 안에서 지역구 당선자부터 먼저 채우고 모자라는 것은 비례대표로 채우는 것이다.

자주 나오는 질문이 '만약 A정당이 30석을 배분받았는데, 지역구에서 31명이 당선되면 어떻게 하느나?'는 것이다. 이런 경우를 초과의석이라고 한다. 독일과 뉴질랜드에서는 최과의석이 발생하면, 일단 인정을 해 준다. 지역구에서 당선된 사람을 무효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초과의석이 발생하면, 정당득표율과 의석비율의 비례성은 훼손되게 된다. 그래서 독일의 경우에는 초과의석이 발생하면, 초과의석이 발생하지 않은 다른 정당에게 비례대표 의석을 더 나눠준다. 이것을 보정의석이라고 한다. 결국 정당득표율과 의석비율을 최대한 맞추겠다는 것이다. 뉴질랜드의 경우에는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고 초과의석이 발생하면, 그 정당이 조금 이익을 보게 놔둔다. 그렇게 하더라도 뉴질랜드에서는 초과의석이 별로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큰 문제는 되지 않고 있다.


비례대표제 선거제도가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더 나은 선거제도인 것은 분명하다. 다시 한 번 정리하면 아래의 내용과 같다.

1) 표심을 반영해서 국회/지방의회의 의석이 공정하게 배분된다.

2) 다양한 정당들이 의회에 진출할 수 있고, 다양한 계층, 연령대, 성의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3) 다양한 정당들이 정책으로 경쟁하므로 정책의 질이 향상된다.

4) 지역구 선거가 의회구성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득표율에 의석배분을 좌우하게 되므로 지역구도가 완화될 수 있다.


세계행복도조사에서 1위를 여러 번 차지했고, 부패 없는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덴마크는 대표적인 비례대표제 국가이다. 덴마크의 선거제도는 정당득표율에 따라 175석의 국회의석을 배분하고, 섬 지역에 추가로 4석의 국회의석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175석의 국회의석을 정당득표율에 따라 배분하기 때문에 1) 다양한 정당이 국회내에 들어간다(다당제).  2) 그리고 1위를 차지한 정당이 과반수를 차지할 수가 없으므로 자연스럽게 여러 정당들이 연합하여 연립정부를 구성하게 된다.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각 정당들은 자기 정당의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해 치열하게 정책협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정책들이 채택되고, 소수정당의 정책이라고 하더라도 연립정부 구성과정에서 관철시킬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정당들이 선거에서 더 높은 득표를 얻기 위해서는 치열하게 정책으로 토론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것이 행복도 1위 덴마크의 행복비결이다.


국제적인 비교조사를 보면, 선거제도가 한 국가의 행복도나 민주주의 수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2016년 세계행복보고서에서 행복도 1~5위까지를 차지한 국가들은 대표적인 비례대표제 국가들이었다. 6위를 차지한 캐나다의 경우에는 소선거구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비례대표제 선거제도로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시민사회와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다. 표심을 왜곡하는 승자독식의 선거제도로는 캐나다의 민주주의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에 세계행복보고서에서 행복도 56위(2017년)를 차지하고 있는 대한민국, 51위(2017년)를 차지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에는 소득수준에 비해 행복도가 떨어지는 국가들이다. 그 이유를 선거제도와 떼 놓고 생각할 수 없다. 복지, 교육, 환경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책으로 경쟁하는 정치가 필요한데,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 중심의 선거제도를 갖고는 그런 정치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부패가 가장 적은 국가들을 뽑아보더라도, 모두 비례대표제 선거제도를 택하고 있는 국가들이다. 다양한 정당들이 정책으로 경쟁하면서 서로 견제, 감시하는 정치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지수에서 상위6위내에 들어가는 국가들도 모두 비례대표제 선거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들이다.

한국의 지역주의는 표심을 왜곡시키는 선거제도 때문에 유지되고 있다. 19대 총선에서 부산, 울산, 경남에서 국회의원 1사람을 당선시키는데 필요한 표수는 새누리당은 49,728표였던 반면에, 더불어민주당은 7배나 많은 표가 필요했다. 더불어민주당이 평균적으로 25%정도를 득표하며 2등을 한 지역구가 많았지만, 2등을 찍은 표는 전부 사표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득표율과 의석비율이 심각하게 불일치하게 된다. 부산, 울산, 경남에서 25%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은 의석을 7.7%밖에 차지하지 못하게 된다. 반면에 51.2%를 득표한 새누리당이 무려 92.3%의 의석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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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도 선거제도가 고정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정권이 바뀌거나 하면 선거제도도 바뀌어왔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보면 승자독식의 선거제도가 지배해 왔다고 할 수 있다.

해방이후인 1948년부터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로 국회의원 선거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1963년 박정희 정권때 '전국구'라는 이름으로 병립형 비례대표제가 되입됐다. 대한민국의 '전국구'는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려는 취지로 도입한 것이 아니고, 독재정권이 안정적으로 국회에서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도입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예를 들면 전두환 정권당시의 전국구 의석의 배분은 최다의석을 얻은 정당이 3분의2를 차지하고 나머지 3분의 1은 여타 정당이 의석수 비율대로 갖도록 했다. 대통령 소속정당이 지역구에서 혹시라도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할까봐, 전국구를 추가배분하기 위해 도입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이 드신 분들은 '비례대표'라는 말보다 '전국구'라는 말이 익숙하고, '전국구'에 대한 생각이 부정적으로 형성됐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대체로 소선거구제를 유지해 왔지만, 유신 정권 때와 전두환 정권 때 잠깐 중선거구제를 도입했었다. 1선거구제에서 2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중선거구제도 독재정권의 유지를 위한 수단이었다. 1선거구제에서 2명을 뽑으면, 여당이 우선 1석을 확보하고 나머지를 여당이 1석 더 가져가거나 야당이 1석을 나눠가지는 형식이 되기 때문에 정권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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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총선 결과를 보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득표율보다 의석을 더 많이 얻었다. 반대로 국민의당과 정의당은 득표율에 비해 훨씬 적은 의석을 얻었다. 이것은 어느 정당에게 유리 하냐, 불리 하냐, 로 따질 일이 아니다. 선거 때마다 이득을 얻는 정당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득표율과 의석비율의 차이가 큰 것은 50%에 못 미치는 득표율로도 지역구에서는 당선될 수 있기 때문이다. 표에서 보는 것처럼, 50%의 지지율에 못 미치고도 당선되는 비율이 54%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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